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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찬] 초콜릿 키스



초콜릿 키스
열 하 나 




"네가 왜 여기 있어?"
"하하, 안녕 형."




어색하게 웃어보인 찬에게 아니나 다를까 따가운 시선이 한껏 쏟아졌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집에서 곤히 자고 있던 제 애인이 여기저기 상처를 달고 심지어 한쪽 다리에는 깁스를 찬 채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본 원우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보고 온 환자 차트에 있던 '이찬'이 동명이인일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제 애인일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다. 순간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아 원우는 거칠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가 입고 있는 흰 가운이 스치는 소리에서 왠지모를 위압감이 느껴져 찬은 금방이라도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게…… 형 보려고 오는 중에 오토바이랑 부딪혀서……."




나름 변명이랍시고 주절대며 말꼬리를 흐리던 찬은 그럴수록 굳어지는 원우의 표정을 보고선 이내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원우 또한 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자신을 보러 오다가 사고를 당한 어린 애인을 차마 혼낼 수가 없었다. 크게 놀라기는 했지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찬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 생각까지 미치자 원우는 결국 한숨을 폭 쉬고 찬을 품에 살며시 안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해……."
"다음부터 이렇게 사람 놀라게 하면 혼나, 이찬. 함부로 다쳐와도 마찬가지야."




찬을 안은 채로 등을 토닥여 주던 원우는 이내 그가 제 가운을 꼭 잡고 더 안겨오는 것을 느끼며 작게 웃음지었다.




"그리고, 1인실로 옮겨."




참고로 말하지만 원우는 찬의 애인이기도 했지만 정형외과 의사이기도 했으며, 또한 찬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오늘은 어때. 기분 좀 괜찮아?"
"아니이, 심심해. 나 잠깐만 나갔다 오면 안 돼 형? 응?"
"뼈가 어느 정도 붙기 전까지는 안 돼."




단호한 원우의 대답에 찬은 그치마안…… 하며 말을 흐렸다. 볼 부근이 통통해지고 아랫입술이 나온 것을 보니 그가 이미 뾰루퉁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입술이 더 나오기 전에 원우는 가운 주머니에서 작은 초콜릿을 꺼내 포장지를 까 찬의 입 앞에 가져갔다. 아, 하는 원우를 따라 입을 작게 벌린 찬의 입 속으로 달달한 초콜릿이 자취를 감추었다. 어린 아이마냥 달콤한 것을 물려 주니 금새 조용해지는 찬이 귀여워 살풋 웃은 원우는 주머니 속에서 또다른 초콜릿 하나를 꺼내 이번에는 제 입 속으로 넣는다. 이렇게 찬의 회진을 돌 때면 원우의 가운 주머니 속에는 작은 초콜릿 두 개가 들어있었다. 본디 밖으로 돌아다니는 성향이 강했던 찬이 24시간 내내 작은 병실 안에만 갇혀있는 것은 그를 우울하게 만들 것이 뻔했다. 단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며, 원우는 찬을 위해 평소엔 눈길도 주지 않던 초콜릿 한 봉지를 그의 사무실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 그 모습을 본 동료 의사들의 놀라워하는 눈빛에 멋쩍을 법도 했던 원우는 묵묵히 초콜릿 봉지를 뜯어 하트가 그려진 작은 상자에 옮겨 담았다고 한다. 오직 자신의 어린 애인만을 위해.




"아, 이런."




계산 미스였다. 남아있던 일로 인해 찬의 회진 시간에 조금 늦어지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보지 않고 대충 상자에서 초콜릿을 집어온 원우는 제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을 어찌 해야할지 고민했다. 포장지는 두 개, 그러나 멀쩡한 초콜릿은 한 개. 항상 초콜릿은 찬의 병실로 가지고 갔으며 자신은 사무실 안에서 먹은 기억조차 없다. 아마 자신의 사무실에 매일같이 들리는 소아과의 이석민 혹은 권순영의 짓일 것이다. 잔뜩 주름진 초콜릿 포장지가 원우의 손에서 바스락 소리를 내며 구겨져 옆에 있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찬아, 오늘은 초콜릿 하나밖에 없어."
"에에, 왜? 형은 안 먹어?"




도리도리, 원우가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럼 오늘은 형이 먹어! 난 괜찮아.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 찬이 베시시 웃었다. 원우가 침대의 찬 옆에 걸터앉은 채 말한다.




"형은 너 아니었으면 손도 안 댔을걸. 너 먹어. 괜찮아."
"그래도오……."




혼자 먹기는 좀 그래. 찬이 원우에게서 초콜릿을 넘겨받고는 작은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손 안의 체온이 초콜릿을 녹여버리지는 않을까 싶어 초콜릿을 쥐지도 못하고 손바닥을 쫙 펴고 있는 찬의 모습을 본 원우의 가슴 한 켠이 간지러워온다. 아, 귀여워.




"우리 둘 다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있긴 한데."
"뭔데?"




가만히 손바닥 위에 올려진 초콜릿을 집어 포장을 뜯어내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찬의 시선이 얽혔다. 아, 하고 작게 벌려진 찬의 입술 사이로 조그마한 초콜릿이 파고든다. 입술로 초콜릿을 문 채 의문 섞인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찬의 코앞으로 원우가 다가왔다. 초콜릿을 사이에 두고 맞물리는 입술에 찬의 두 뺨이 금새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 이내 두 눈을 가볍게 감아버린 찬은 알지 못했다. 자신보다 그의 입술을 머금은 이의 심장이 더욱 뜨거웠다는 것을. 타액과 엉킨 초콜릿 조각이 둘의 입 안을 배회했다. 혀 끝부터 목구멍까지 달콤함이 가득 찬다. 숨을 뱉고 들이쉴 때마다 단내가 훅 풍겼다. 진득하고, 두근거리고, 달콤한 입맞춤. 몇십 번을 그들의 혀에서 굴려졌을까, 사각의 초콜릿 조각은 달콤쌉싸르한 향기만을 남기고 그 형체를 잃은 지 오래였다. 조금이라도 더 그 달콤함을 음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마냥 원우와 찬은 초콜릿이 사라진 이후에도 서로의 입술을 찾는다. 결국 원우가 먼저 입술을 뗌으로써 막을 내린 행위는 찬의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놓았다.




"오전 회진은 끝. 이따가 저녁에 다시 올게."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은 닫힐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형 간다. 원우의 손가락이 멍한 찬의 볼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고는 멀어져갔다. 은근한 미소와 함께 찬의 볼 못지않게 달아오른 그의 귀 끝이 꽤나 볼만했다.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를 뒤로하고 부끄러움에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병실을 빠져나가던 원우의 등판을 떠올린 찬의 머릿속에 방금 전의 입맞춤이 재생되었다. 아, 어떡해. 선배를 짝사랑하는 여고생 마냥 다시금 붉어지는 볼을 두 손으로 감싼 찬의 입꼬리가 슬슬 호선을 그린다. 흐흥, 흥, 기분 좋은 웃음 소리 이후 몸을 잠식해오는 부끄러움과 설렘에 찬은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선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며 구르기 시작했다.




"어후……."




초콜릿 키스의 여파가 생각보다 강력했던 것 같다. 원우는 레포트를 보다가도 자꾸만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찬의 파르르 떨리는 눈두덩이와 아직도 혀 끝이 아려올 정도로 남아있는 달콤함 때문에 정신을 놓고 멍해지기 일쑤였다. 생각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도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쥐고 있던 펜을 놓아버리고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만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뛰는 심장이 곧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심장 외과에 있는 이지훈을 만나봐야 하나. 그러나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기분 좋은 설렘이었다. 초콜릿. 두 개가 아닌 하나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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